“노숙인이 아니라 가족입니다”…LA 김요한 신부의 18년 동행
– 2009년 한인 노숙인 15~16명과 공동생활 시작…현재 15명 안팎 함께 거주
– 세월호·이태원 추모부터 시민사회 연대까지…”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해야”
로스앤젤레스에서 18년 가까이 한인 노숙인들과 한집에서 생활하며 이들의 삶을 지켜온 성직자가 있다.
LA 세인트 제임스 교회에서 사목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김요한 신부다.
김 신부는 2009년 1월부터 거리에서 생활하던 한인 노숙인들과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현재도 65세 이상의 고령 한인들을 중심으로 15명 안팎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에게 노숙인들은 일방적으로 도움을 베풀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한집에서 밥을 먹고, 다투고,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이다.
김 신부는 최근 JNC TV 조부경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활동을 특별한 봉사라고 부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활동을 특별히 하는 게 아니라 직업상 자연스럽게 어려운 사람들하고 같이 하게 됐습니다.”
그는 노숙인들을 위한 별도의 사역이라기보다 자신의 집에서 한인 노숙인 어르신들과 가족처럼 살아가는 일상이라고 설명했다.
김 신부의 활동은 주거 지원을 넘어 취업 알선, 노년 돌봄, 지역사회 연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 “추위를 피하려 버스를 탑니다”…한인 노숙인들과의 첫 만남
김 신부가 한인 노숙인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약 20년 전이다. 당시 교회의 노숙인 지원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인 노숙인을 통해 LA 한인타운 곳곳에 거리 생활을 하는 한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이들을 맥도날드로 초대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예상과 달리 ‘버스 토큰’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길에서 땅에서 자면 아침에 너무 춥다는 거예요. 그러면 버스를 탄대요. 버스를 타면 몸이 녹는다는 거예요.”
김 신부는 처음에는 식사와 버스 이용권을 지원하다가 노숙인들의 거처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9년 1월부터 약 15~16명의 한인 노숙인들과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여러 차례 거처를 옮기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 기부자가 교회에 주택을 기증하면서 현재의 공동생활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김 신부에 따르면 그동안 약 180명이 공동체를 거쳐 갔으며, 이 가운데 40명가량은 취업해 독립했다. 현재는 노동 능력을 상실한 65세 이상 고령자들을 중심으로 약 15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 “우리 집은 웃음이 넘치는 전쟁터”…쉼터 아닌 가족 공동체
김 신부는 자신이 운영하는 공동체를 일반적인 노숙인 보호시설과 구분했다.
“저희가 무슨 쉘터도 아니고 그냥 우리끼리 모여서 같이 산 거예요.”
그는 공동생활을 ‘웃음이 넘치는 전쟁터’라고 표현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한집에서 생활하다 보니 다툼도 있지만, 다시 화해하고 웃으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의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처음에는 식사 당번과 설거지 순번 등 규칙을 정했지만 오히려 갈등이 커졌다. 이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각자의 자유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공동생활이 한결 원만해졌다고 했다.
매주 수요일에는 구성원들이 모여 서로를 칭찬하고, 잘한 일을 이야기하며 상금을 주는 시간도 갖는다.
그러나 오랜 공동생활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함께 살아온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날 때라고 털어놨다.
김 신부는 최근 3년 동안 공동체에서 생활하던 고령자 10여 명이 세상을 떠났다며, 가족처럼 지내던 사람들과의 이별이 가장 큰 아픔이라고 말했다.
■ 세월호·이태원 추모부터 LA 총영사관 주변 청소까지
김 신부의 활동은 노숙인들과의 공동생활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LA 종교평화협의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세월호·이태원 참사 추모 행사,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 집회,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등 다양한 시민사회 활동에도 참여해 왔다.
종교평화협의회에는 여러 종교 지도자들이 참여해 종교 간 이해와 평화, 사회적 연대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 신부는 종교인으로서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회적 현장에 참여해 왔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했던 시민들과 함께 LA 총영사관 주변을 2주마다 청소하는 환경정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과거 총영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던 시민들이 이제는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자는 취지로 활동을 시작했다며, 최근에는 멕시코계 주민까지 청소에 동참했다고 소개했다.
또한 노숙인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하려다 구입한 LA 외곽의 사막 땅을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이용하는 ‘평화농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대추 수확과 족구대회 등 다양한 교류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 “정치적 견해 다르다고 봉사까지 외면할 때 마음 아파”
김 신부는 오랜 활동 과정에서 정치적·사회적 견해 차이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LA 한인사회에서 진보적 성향의 시민사회 활동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거나 오해를 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노인들을 돌보는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다가도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원을 꺼리는 사람들을 볼 때 마음이 아팠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한인들 사이에 지나친 대립과 갈등이 발생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김 신부는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과도 매달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부모들이 대화와 공부를 통해 점차 자녀를 이해하게 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 “어려운 이웃을 발견했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김 신부는 인터뷰 말미에 어려운 이웃을 발견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길에서 노숙인을 발견한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 데려가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현재 공동체에는 더 많은 사람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다. 김 신부가 수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하면 일부는 실망하거나 서운해한다고 했다.
그럴 때 그는 되묻는다.
“그러면 선생님 댁에 좀 모시고 가면 어떠냐고.”
김 신부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이 특정 개인이나 기관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와 같다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기회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신부에게 지난 18년의 시간은 특별한 봉사활동이라기보다 이웃과 삶을 나누며 살아온 일상이었다.
그가 자신의 집을 ‘웃음이 넘치는 전쟁터’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로 다투고 웃으며, 때로는 이별의 아픔까지 함께 견뎌내는 가족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조부경 앵커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우리 주변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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