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생 외손자 필립 안 커디 “소장 자료 디지털화해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어”
-LA 자택에 도산 서예·가족사진·이민사 자료 보관…”이것은 제 인생이자 가족 이야기”
-청소년 에세이 대회·자선활동 등 다양한 활동으로 도산 정신 이어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외손자인 필립 안 커디(Philip Ahn Cuddy) 씨가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JNC TV 조부경 앵커와 인터뷰를 갖고, 자택에 보관하고 있는 도산 가족 관련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한국어로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커디 씨는 도산의 딸 안수산 여사의 아들로, 현재 로스앤젤레스에서 거주하며 도산과 가족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그의 자택에는 도산의 서예 작품을 비롯해 가족사진, 각종 증서와 기념품,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이 보관돼 있다.

커디 씨가 가장 먼저 소개한 자료 가운데 하나는 도산의 글씨가 담긴 ‘애기애타'(愛己愛他)였다.

그는 “‘애기애타’는 도산이 직접 지은 좋은 글귀”라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사랑하라’는 의미”라며 “제가 하와이에 갔을 때 느꼈던 ‘알로하’와도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커디 씨는 도산이 하와이에 여러 차례 머물렀던 점을 언급하면서 “그래서 제가 이 말을 특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도산이 평소 사람들 사이의 사랑과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도산 가족의 LA 정착 과정 소개

커디 씨는 가족사진을 보여주면서 도산 가족의 미국 정착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도산 가족이 리버사이드에서만 생활했다는 일부 설명은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1913년에 리버사이드에서 LA로 왔고요.”

그는 1914년 가족이 로스앤젤레스 벙커힐 지역의 주택(1411 West 4th Street)으로 이주했으며, 어머니 안수산 여사는 1915년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설명했다.

커디 씨에 따르면 외삼촌 필선은 리버사이드에서 태어났고, 또 다른 외삼촌 필립은 190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는 “도산의 가족을 최초의 코리안 아메리칸 가족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며 “아이들이 모두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산과 이혜련 여사는 3남 2녀를 두었다. 장남 안필립(Philip Ahn), 차남 안필선, 삼남 안필영(Ralph Ahn), 장녀 안수산(Susan Ahn Cuddy), 차녀 안수라 등이 그들이다.

안수산 여사는 191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시아계 여성 최초로 미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커디 씨는 집 안에 보관하고 있는 어머니의 흉상도 보여줬다.

그는 흉상을 바라보며 “가끔 이걸 보면 그냥 ‘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오렌지 농장 사진, 캘리포니아 한인 역사”

집에는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진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캘리포니아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는 한인 노동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커디 씨는 이를 “리버사이드 오렌지 사진”이라고 소개하면서 “신한민보에서 노동자를 모집하기 위해 사용한 광고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진 속에 상자와 가방에 오렌지가 가득하고 옷도 깨끗하게 차려입은 모습을 가리키며 “실제 노동 현장을 그대로 찍었다기보다는 연출된 사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정말 좋은 사진”이라며 “캘리포니아의 역사”라고 설명했다.

벽에 걸린 액자 사진에는 젊은 시절의 외할머니 이혜련 여사의 모습과 남편인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추서된 건국훈장을 대신 전달받는 이혜련 여사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커디 씨는 한국에서 스포츠 경기 초청을 받았던 일화와 기념품으로 받은 도산의 이름이 적힌 티셔츠도 소개했다.

그는 2024년 LG 트윈스의 초청을 받았으며, 광복절에는 한화 이글스의 초청으로 시구를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전주 현대모터스 축구단의 초청을 받아 시축을 했으며 애국가도 불렀다고 했다.

또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자신의 자택을 방문해 고 안수산 여사에게 준 선물과 감사패도 소개했다.

“공립협회, 독립운동 조직으로 발전”

커디 씨는 도산의 미주 독립운동과 관련해서도 설명했다.

특히 190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공립협회를 언급하면서 “처음에는 친목 성격의 조직이었지만 이후 활동과 목표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공립협회는 1905년 도산 안창호 선생 등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한 단체로, 미주 한인의 계몽과 권익 보호, 국권 회복 등을 목표로 활동했다. 이후 대한인국민회로 발전하는 기반이 됐다.

커디 씨는 당시 공립협회가 한인들을 연결하는 정보망을 구축하고 취업 알선 등 생활 지원에도 나섰다고 설명했다.

“공립협회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있었습니다. 도산은 편지 등을 통해 계속 정보를 받고 있었어요.”

그는 공립협회가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와 레드랜즈, 유타 등 여러 지역에 취업 알선 조직을 두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산은 1907년 귀국한 뒤 신민회 활동 등을 통해 국내 계몽운동과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신민회가 해체되면서 다시 해외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커디 씨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도 도산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도산은 명성황후가 시해될 때 서울에 있었습니다. 당시 십대였습니다.”

그는 “도산의 사상을 좀 들여다보면 명성황후가 강조했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설파하고 있었다”며 “‘일본인들에게 땅을 팔지 말라, 특히 해안 땅은 더더욱 팔지 말라’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도산의 정신,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어”

커디 씨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사진과 문서 등을 디지털화하고 한국어로 번역·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커디 씨가 현재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족과 도산에 관한 자료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이라고 했다.

“자료가 정말 많습니다. 하나하나 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디지털화하려고 합니다.”

그는 한 지인의 아버지가 보관하고 있던 사진과 관련한 일화도 소개했다. 사진에는 이광수, 주요한, 신익희, 김여제 등 여러 인물이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이들이 독립선언서의 최종 편집과 관련된 인물들이라고 말했다.

또 독립선언과 관련된 움직임이 상하이와 만주, 도쿄 등으로 이어졌으며, 도쿄에서 두 여성이 관련 문서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마리아와 신창경 등이 도산의 연락책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커디 씨는 도산이 여성 연락책 네트워크도 활용했다고 설명하면서 “일본 측에서는 남자들이 여성에게 이런 활동을 하도록 허락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산은 모든 지도자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인물”

커디 씨는 도산에 대해 강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그는 도산에 대해 “모든 지도자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도산이 독립운동뿐 아니라 교육과 산업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도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신민회 활동을 언급하며 학교와 산업체, 출판·교육기관 등을 통해 자립 기반을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신민회는 학교도 만들었고 산업과 교육의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한일병합 이후 일본이 신민회를 탄압했습니다.”

커디 씨는 한국의 역사와 인물 이름을 오랫동안 기억해 온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한국어 이름과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답했다.

“이것은 제 인생이니까요. 제 가족 이야기입니다.”

이어 “제가 이런 것들을 메모도 없이 어떻게 다 기억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것들을 계속 공부해 왔어요. 뭐, 직접적으로 공부한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늘 그 역사와 함께해 온 거죠”라고 설명했다.

“도산공원 묘역 제대로 보존하고 싶어”

커디 씨가 앞으로 추진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는 서울 도산공원 묘역 보존이다.

도산과 부인 이혜련 여사의 묘역이 있는 도산공원을 언급하면서 “공원의 대부분은 괜찮지만 묘역이 가장 심각하다”고 말했다.

“제 할머니도 도산 선생님 옆에 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곰팡이가 슬고 묘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그는 수년 동안 관련 문제를 제기해 왔으며 최근에야 보수 작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커디 씨는 도산이 한국에서 널리 추앙받고 있는 것과 묘역 관리 상태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산은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곳인 강남, 그중에서도 압구정에서 최고의 애국자로 추앙받고 있는데 정작 도산 선생님 묘소는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이 아픕니다.”

어린이 에세이 대회도 추진

커디 씨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에세이 대회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약 20년 동안 삼일여성동지회 에세이 대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직접 글을 쓰면서 역사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커디 씨는 앞으로도 어린이들이 한국계 미국인의 역사와 자신의 가족사를 직접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커디 씨는 도산의 이름이 붙은 해군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한화오션이 건조하고 대한민국 해군이 운용하는 도산안창호함을 언급하면서 “제가 왜 마음이 안 좋은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저는 누구도 잠수함에서 평양을 폭격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 잠수함에 도산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도산 선생님이 가장 원하지 않았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도산의 가족으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개인적인 견해라고 그는 말했다.

서핑 선수·어린이 돕고 자선활동도

커디 씨는 역사 보존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서핑 업계에서 일하면서 젊은 선수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는 한 한국계 혼혈 서퍼를 돕고 있다고 했다. 양양에서 태어난 이 선수는 최근 2년간 출전한 대회에서 잇따라 우승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커디 씨는 소개했다.

그는 “한국계 혼혈이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일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커디 씨는 또한 서울의 로널드 맥도날드 하우스와 관련한 자선활동도 20년 동안 해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암 투병 어린이들을 위해 5천 달러 상당의 수건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또 빙그레의 기업 역사에서도 도산과 흥사단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빙그레 웹사이트에서 회사 역사를 보면 도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모두 나와 있더라고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커디 씨는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달라”고 말했다.

도산의 외손자인 커디 씨는 가족이 보관해 온 자료를 디지털화해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한편, 청소년 교육과 봉사활동 등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도산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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