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와 여성 운동의 큰 별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서거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운동의 대표적 인물이자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영부인이었던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한국시간 6월 10일 오후 11시 37분 향년 97세의 일기로 서거했습니다.
1922년 어머니 이순이, 아버지 이용기 씨의 넷째로 태어난 고인은 1950년 대학을 졸업하던 해부터 한국전쟁 피난살이 와중에도 이태영, 김정례 선생 등 1세대 여성 운동가들과 함께 대한여자청년단과 여성문제연구회 등을 조직하여 왕성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미국 유학을 마친 뒤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여성문제연구원 간사, YWCA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등을 역임하며 1세대 여성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YWCA 총무로 일하던 1962년 당시 야당 정치인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하였으며, 공덕귀, 이우정 선생 등과 함께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유신독재 시절 야당 유력 정치인으로서 탄압을 받던 남편이 납치,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르다 사형 선고를 받기까지 숱한 고난의 시간 동안 함께 투쟁하며 구명 운동을 펼쳤고, 왕성한 사회활동으로 형성된 재야, 여성계, 학계, 기독교계 인맥을 통해 고졸 출신 정치인 남편의 망명 생활과 정치 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1997년 이후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영부인으로서 김대중 정부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행정부에 여성부를 설치하고 가정폭력방지법과 남녀차별금지법 등을 시행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비판자이자 조언자로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고, 소외계층의 복지와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다음 세대에 분단의 아픔을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남북화해를 위해 두 차례 방북 특사의 역할을 수행한 평화 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사회 문제에 눈 뜬 여성 운동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투사로서 굴곡진 현대사와 삶의 궤를 같이했던 고인은 생전 한 인터뷰에서 “내 양심에 비추어 일생을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생각한다”며, “여성 운동가·민주화 운동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삶에 대해선 서로 인격을 존중하며 일생을 값있고 뜻있게 살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오늘날의 나는 아내 덕분”이라는 취지의 말을 생전에 여러 차례 했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 그도 그럴 것이 이희호 이사장이 없었다면 대통령 김대중도 없었을 것입니다.
생전 고인의 바람대로 대통령의 부인보다는 여성 운동가, 민주화 운동가로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합니다. 당대와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온 생을 바쳐 투신한 고인의 삶이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되살아나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밝혀주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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