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엔젤라 하 앵커입니다.
쇼트트랙 금메달 리스트 심석희 선수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4년부터 2018년 평창올림픽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까지 무려 4년간,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폭행과 폭언 및 협박을 동반한 상습적인 성폭행에 시달려왔다고 폭로했는데요. 현재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는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 체육계가 지닌 고질적인 병폐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연일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교육 강화와 영구제명 등의 대책만으로 체육계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고질적인 성폭력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성폭력은 근본적으로 힘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구조적 폭력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폭력을 만드는 위계적인 권력 관계를 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습니다. 선수에 대한 지도자의 상습적인 폭행과 성폭력이 가능한 것은 지도자가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선수를 통제할 수 있는 구조 때문이니까요.
선수가 선수촌을 이탈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는데도 진상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빙상연맹을 보면, 이 조직이 위계적인 권력 관계에 의한 폭력에 얼마나 둔감하고 문제의식이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스포츠계 미투의 출발점이 될 조재범 성폭력 사건을 보면서, 미국 체조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Larry Nassar)의 성범죄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요. 30년 동안 300명이 넘는 여자 선수에게 저지른 성범죄로 360년형을 선고받은 그에게 법원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신뢰를 이들 소녀와 여성에게서 강탈해간 죄”를 물었다고 하니, 인간에 대한 신뢰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강탈당한 소녀들과 여성들의 그 깊은 상처의 무게에 비하면 360년은 도리어 가벼운 형벌은 아닐까…
나사르의 성폭력 사건으로 미시간 주립대 총장이 사임하고 학생들에게 5400억 원의 배상금을 물게 됐으며, 미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미국 체조협회장과 체조협회 이사진이 전원 사퇴했고, 미국올림픽위원회는 나사르의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 체조계의 묵인이 있었는지 조사 중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이를 제대로 잡지 못한 사회시스템에 대해 책임을 무겁게 나눠져야 한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조재범 성폭력 사건으로 대한체육회 회장과 한국빙상연맹 회장 및 이사진 전원 사퇴를 바라는 건 무리일까요? 아니 그보다 먼저 대한체육회가 조재범의 폭행 및 성폭력 범죄에 대해 빙상연맹의 묵인이 있었는지 조사하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를 묻게 되는 오늘,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가해자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와 존엄을 강탈당한 그 깊은 상처를 딛고 태릉선수촌으로 돌아온 심석희 선수가 좀 더 밝은 얼굴로 자유롭게 얼음을 지칠 수 있도록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마음조차 미안해지고 무겁기만 한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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